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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화의 휴먼에세이] (11) 누가, 동생을 아프게 했어?

휴먼뉴스 | 기사입력 2019/09/30 [09:05]

[정경화의 휴먼에세이] (11) 누가, 동생을 아프게 했어?

휴먼뉴스 | 입력 : 2019/09/30 [09:05]

“누가, 동생을 아프게 했어?”


잠시 멈춰 숨을 고른다. 살며시 문을 밀고 들어섰다. 여기 오기까지 52년이 걸렸다. 하얀 가운이 잘 어울리는 의사가 부드러운 눈인사로 책상 앞 의자를 가리켰다. 문을 열고 들어서 자리에 앉기까지 6초 걸렸다. 정신과 상담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수없이 상상했었다. 그런 내 앞에 정신과 의사가 앉아있다. 그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떻게 왔어요?”
“아, 네, 저... 제가 긴장을 많이 해요. 남들 앞에서 말을 할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모자라고 바보 같은 나를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 굴레를 벗고 싶었다.
간단한 테스트를 마친 후 의사는 말을 꺼냈다.
“테스트 결과 스트레스가 심한 것으로 나오는데 뭐가 제일 힘들어요?” 그걸 꼭 짚어 어떻게 말하라는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우선 일이 많다고 했다. 퇴근 후에도 새벽까지 일을 하는 일중독 성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물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 사람들 앞에서 왜 긴장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내가 알고 싶다. 의사를 통해 원인을 알고 병이면 고치려고 이곳에 왔다. 그런데 의사로부터 거꾸로 질문을 받는 것이 이상했다. 심리학책이나 더 읽을 걸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처한 눈빛으로 그의 눈을 응시했다. 의사는 나를 ‘ooo 환자분’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성을 빼고 ‘oo씨’라고 불렀다. 그가 가깝게 느껴졌다.

“그럼, 어릴 때 제일 안 좋았던 기억 한 가지 말해 줄 수 있어요?” 나는 눈을 위로 치켜뜨고 기억을 더듬었다. 엄마가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 나를 때렸던 기억? 자식은 4명이나 있었는데 말이다. 성질 더러운 언니 때문에 내 머리카락이 한 뭉치씩 뽑혔던 기억도 떠올랐다. 언니랑 대판 싸운 다음날 미용실에 갔다. 미용실 언니가 깜짝 놀라 물었다. “어머나, 너 머리 왜 이래? 원형 탈모 생겼니?”
“아니에요. 어제 언니한테 쥐어 뜯겼어요. 진짜 언니 때문에 못 살겠어요.” 감정이 복받쳐 미용가운을 뒤집어 쓴 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었다. 그 뿐이 아니다. 연탄집게를 들고 있는 언니와 마주친 날의 무서운 기억도 생각났다. 그날도 언니는 나를 보자 연탄집게를 벌려 내 목을 짚어 꽉 조였다. 순간 ‘앗! 뜨거!’ 나는 언니를 있는 힘껏 밀쳐내고 펄쩍펄쩍 뛰었다. 다행히 아빠의 극진한 치료 덕분에 목 양쪽에 생긴 젓가락모양 상처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런 기억은 여동생 진이에 대한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진이를 좋아했다. 귀여웠다. 엄마와 아빠는 직업이 있어서 늘 집을 비우셨다. 언니와 나, 동생 진이는 보호자 없는 집에 남겨지곤 했다. 여하튼 엄마와 아빠가 3년 간격으로 사이가 좋았던 모양이다. 모두 3살 터울이다. 그 때만 해도 아이들을 빈 집에 남겨두고 일을 나가는 부모가 많았다. 엄마도 그런 간 큰 엄마였다. 1972년, 내가 6살이던 여름날. 간신히 걷는 동생을 데리고 집밖으로 나왔다. 손에 움켜 쥔 과자봉지에서 과자를 하나씩 꺼내 먹는 것이 즐거웠다. 3살짜리 진이는 내가 과자를 먹는 동안 뒤뚱뒤뚱 걷다가 넘어지곤 했다. 계단 근처로 가면 굴러 떨어질 것 같아 진이를 내가 기대섰던 난간에 앉혔다. 맛있게 과자를 먹다가 옆을 보았다. 진이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은 2층이었고 아래는 상가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6살. 무엇을 할 수 있는 나이일까?

어른 슬리퍼를 신고 있던 나는 힘겹게 계단을 내려가 동생을 찾아보았다. 아래층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아주머니들은 놀란 표정으로 물을 뿌리며 시뻘건 물을 씻어 내고 있었다. 동생은 없었다. 큰 슬리퍼는 계단을 올라올 때는 한결 편했다. 동생을 잃어버렸다. 엄마한테 혼날 것이 뻔했다. 그날 밤, 엄마와 아빠는 집에 오지 않았다.

얼마 후 처음 보는 아저씨가 찾아 왔다.
“꼬마야, 동생 어디 갔어?” 내가 동생을 잃어버렸다.
“꼬마야, 나는 경찰아저씨야. 동생이 많이 아픈데 누가 동생을 다치게 했니?”
동생이 다쳤다고? 동생은 난간에 앉아 있다가 없어졌고 동생을 난간에 앉힌 것은 나였다.
“누가 동생을 아프게 했어?” 경찰아저씨는 무릎을 굽히고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부드럽게 물었다. 겁이 났다. 비록 6살 기억이지만 선명했고 죽을 만큼 무서웠다. 경찰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무서웠다.
“있잖아요. 어떤 안경 낀 남자가 그랬어요.” 거짓말을 했다. 나쁜 짓하면 경찰이 잡아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 여기 사는 사람이니?”
“잘 몰라요.”

여기까지 기억이 전부다. 지금 생각하면 동생이 2층에서 떨어져 심하게 머리를 다쳤고 1층 바닥은 피로 물들었다. 사람들이 급히 병원으로 동생을 옮겼고 엄마와 아빠는 병원과 경찰서를 오가며 제 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와 경찰은 그런 와중에 만났던 것이다.
엄마는 자주 울었다. 아빠는 말이 없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늘 구석을 찾아가 앉아 있었다. 작고 통통한 양손을 모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보곤 했다. 한 달인지, 두 달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진이가 집에 왔다. 동생을 만나서 나는 좋았다. 진이는 맨들 맨들 스님 머리를 하고 있었다. 작은 머리를 가로지르는 커다란 수술 흔적을 봤지만 그 상처가 의미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는 음식을 진이 입에 넣어주며 웃었다. 진이도 음식을 받아먹으며 웃었다. 나도 웃었다.

상담실이 지나치게 덥게 느껴졌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눈물은 나지 않고 다만 붉은 홍조가 얼굴 전체를 뒤덮어 버렸다. 몸에서 힘이 빠지고 축 늘어져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잠시라도 누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선생님, 누가 저를 보고 있으면 등에서 땀이 나고 심장이 떨려요. 정말 힘든 시간을 지나왔어요. 얘기를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에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때 언니도 같이 있었데요. 언니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는 것 같지 않은데 왜 저만 이렇게 된 걸까요?.” 의사는 사람마다 충격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고 했다. 이제는 죄책감을 벗어버릴 준비를 하자고 했다. 약을 처방해 주었다.

나는 진이를 보면 화가 났다. 진이는 중학교 1학년까지 밤에 이불위에 오줌을 쌌다. 아침마다 진이가 엄마한테 야단을 맞을 때도, 공부를 못해서 고등학교를 가까스로 들어갔을 때도 화가 났다. 늘 싸늘한 언니였다. 다른 사람에겐 웃어도 진이에겐 냉정했다. 매번 숨어서 울면서도 여지없이 투박하게 대했다. 진이는 자주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좋겠다. 언니는 좋겠다.” 무엇이 부럽다는 것인지 물어본 적도 없다.
“공부해, 한글도 간신히 떼고 그게 뭐니? 한글은 노력만 하면 되는 거야!” 동생은 뇌를 심하게 다쳐서 공부머리가 없다. 그리고 사물을 볼 때 얼굴을 삐딱하게 돌리고 본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반듯하게 하고 보면 사물이 안보이냐고 핀잔을 주었다.

“자, 해봐.” 진이의 얼굴을 반듯하게 붙잡고 벽에 걸린 그림을 보라고 했다.
“보여? 안 보여?”
“보여!”
“그런데 왜 삐딱하게 기울이고 보는 거야.”

동생은 뚱해져서 입이 툭 튀어 나온다. 잘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잘 보이는 모양이다. 고쳐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고칠 수 없었다. 진이는 나 때문에 예쁘지도 않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끔찍한 죄책감에서 도망치려고 나는 가혹하고 쌀쌀맞은 언니로 살아버렸다.
“언니는 좋겠다. 언니는 좋겠다.” 이 말은 ‘다 언니 때문이야!’라는 말처럼 들렸다.

세월은 흘렀다. 진이는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착한 남편을 만났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여자아이를 입양해 사랑으로 키우고 있다. 알콩달콩 살고 있다. 대견하다.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물어 가는 석양빛에 눈이 붉게 물들었다. 눈물이 흐른다. 이번엔 다른 눈물이다. 상처 입은 나를 위로하는 눈물이다. 자동차 조수석에 내던져진 가방 안에 하얀 약 봉지가 보인다. 마음에 바르는 약이었으면 좋겠다. 다정한 언니로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이제야 비로소 사랑하는 진이와 상처받은 내 영혼을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동안 정말 미안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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