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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화의 휴먼에세이] (12) 애증의 정석

휴먼뉴스 | 기사입력 2019/09/30 [09:10]

[정경화의 휴먼에세이] (12) 애증의 정석

휴먼뉴스 | 입력 : 2019/09/30 [09:10]

‘애증의 정석’

애증관계, 바로 부부를 떠올린다. 부부를 둘러싼 재미있는 유머들만 골라 듣다보면 웃다가 배꼽 빠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게 된다. 이 관계는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러니까… 잘 모르겠다.

굳이 분석이 필요하다면 멀리서 찾을 것 없다.

엄마, 조ㅇㅇ
아빠, 정ㅇㅇ

엄마와 아빠를 중매한 분은 큰아버지였다. 아빠 형이자 엄마한테는 시아주버님이다. 엄마를 참하게 본 큰아버지가 두 사람 만남을 주선했단다. 엄마는 대청마루에 앉아 있었고 무뚝뚝한 아빠는 방문을 열어 놓은 채 방에 앉아 첫 대면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이건 신식이다. 결혼 전 얼굴이라도 보았지 않은가. 엄마는 ‘그때는 눈깔이 삐었었다.’라고 표현했지만 선택은 엄마가 했다. 비스듬하게 옆으로 돌아앉은 아빠 옆모습에 홀딱 반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빠도 가장 자신 있는 45도 각도로 앉아 엄마에게 슬쩍 매력 발산을 했겠지. 둘 다 외모 상 싫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결혼을 했고 우리 4남매를 낳았다. 생물시간에 배운 바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이상한 경로를 통해서 탄생시키는 것이 자식이다. 이상한 것은 엄마와 아빠 관계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대입시키기 어렵다는 데 있다. 또 이상한 것은 그렇게 싸우면서도 찾는다는 것이다.

“엄마, 어디 갔어? 찾아와!” 아빠 명령이 떨어지면 우리는 온 동네를 뒤져 엄마를 찾아야 했다.
“엄마, 아빠가 오래.” 엄마는 무척 단순한 삶을 살았기에 행동반경이 그리 넓지는 않아 자식들이 고생을 덜 한 편이다. 두 분이 간혹 투닥거려도 우리 4남매는 옆방에서 ‘쎄쎄쎄’를 하고 놀았다. 쎄쎄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자애들 놀이다.

아빠는 집에 있을 때는 진짜 게으르셨다. 아빠가 잠든 머리 주변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아치형으로 널려있다. 과자봉지, 먹다 남은 사과, 담배, 재떨이, 유엔성냥. 아빠가 잠들기 전 무엇을 하셨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가족이 밥상 앞에 둘러앉았을 때도 신기한 일은 있다. 아빠는 오른 손만 사용한다. 아빠가 밥을 딱! 뜨면 엄마가 빛의 속도로 뭘 올려놓는다. 생선살을 언제 발라놓았는지 모르지만 척하니 대령한다. 물론 다음 반찬 선택권은 아빠에게 있다. 아빠가 또 한 수저 밥을 뜨면 엄마는 신중을 기해 반찬을 준비한다. 아빠 마음에 맞으면 가만히 있는 것이고 싫으면 수저를 휙 피해버린다. 그러면 엄마는 다른 반찬을 들어 올려 밥 위에 올려준다. 두 번째는 대체로 거절하지 않고 먹는다. 이것이 궁합인가? 저들은 어떻게 소통하는 것일까? 텔레파시라도 주고받는 모양이다. 아빠가 김을 먹을 때는 정말 신기하다. 한 손으로 모든 걸 처리하는 아빠의 능력. 따끈따끈 김이 올라오는 밥을 한 수저 떠올린다. 그대로 김 위로 가져가 꾹 눌렀다 들어올린다. 와~ 신기하게도 수저 밑에 김이 붙어서 올라온다. 아빠 입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심지어는 머리를 감겨달라고 할 때도 있다. 엄마는 마다하지 않고 다 들어준다. 사춘기 예민한 시절 이 두 사람이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방금 전에 다투는 것을 보았는데 욕실에서 아빠 등에 때를 밀고 있다? 또 엄마에게 등을 맡기는 아빠의 정체는? 매우 수상했다.

내 기억에 남는 부부싸움 명장면이 있다. 올망졸망 4남매가 어렸을 때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좋은 한옥 집에 살았었다. ㄱ자형 집이었다. 마당 가운데 수돗가가 있다. 어느 휴일 날. 엄마는 작심하고 김치 담을 준비를 한다. 열무를 다듬고 큼직한 스테인레스 대야에 자작하게 소금물을 준비하고 열무를 썰어 넣는다. 마당에 무, 배추, 열무, 양파, 파는 물론 부엌에 있는 물건들이 즐비하게 나와 있다. 우리는 엄마 옆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놀았다. 엄마는 가끔 무나 배를 썰어 주셨고 우리는 한 명씩 달려가 받아먹었다.

“경화야, 저기 저거 도.” 뭔가 달라는 말인데 저것이 무엇인지가 문제다.
‘이거?’ 하면서 엄마가 가리키는 쪽 물건 아무거나 들어서 보여주면 ‘그거 말고 옆에, 저 옆에 저거.’ 가능한 빨리 엄마가 원하는 것을 눈치 것 알아내 가져다 줘야 한다. 못 알아듣고 헤매고 있을 때 남동생 용이가 달려와 “엄마, 이거야?” 한다.
“그래, 맞다. 경화 너는 동생만도 못한다.” 내가 집으려고 했는데, 아들로 태어나 호사를 누린 남동생 생존능력은 빼어났다. 덕분에 빨리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우리는 바로 놀이에 몰입한다.

“경화야, 옥아, 진아~~~” 대체 누구를 부르는 것일까? 한 사람을 부르기 위해서 남동생을 제외한 딸 셋 이름을 다 부른다. 당첨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호명 순서는 매번 달라지지만 오랜 경험으로 규칙을 안다. 대체로 마지막에 호명된 사람이 엄마가 원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특이한 점이 또 있다. 유독 내 이름만 정확히 호명된다. 내 이름은 줄여 부를 수 없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엄마의 짜증이 길어지자 방에 누워있던 아빠가 화가 났던 모양이다. 왜 김치 하나 담으면서 그리 짜증을 내냐는 소리가 방안에서 울려 퍼졌음에도 엄마는 멈추질 않았다. 슬슬 전운이 감돈다. 우리는 눈치 빠르게 서열 순으로 마루에 걸터앉았다. 지금은 우리 4남매가 하나가 될 때다.

결국 방에 있던 아빠가 문을 드르륵 열고 나와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가 없다며 화를 냈다. 그리고 애들을 왜 그리 들들 볶냐고 역정을 냈다. 엄마도 한 치 물러섬 없이 맞섰다. 애들 생각하는 것 만 분의 일이라도 마누라 생각 좀 하라고 맞받아쳤다. 그렇게 말다툼을 하던 아빠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모양이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신다. 화가 났음을 표현하기 위해 뭔가를 던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마땅히 정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빠는 하필 가장 무거운 것을 선택했다. 우리는 그냥 보고 있었다. 여동생과 막내는 어려서 그런지 바짝 긴장해 있지만 언니와 나는 아주 여유롭다.

아빠는 열무를 절이고 있는 스테인레스 대야를 집어 들었다. 아마도 김치 하나 담으면서 그리 난리냐는 감정을 실었을 것이다. 아빠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허리 반동을 이용해 대야를 집어 던졌다. 안에 있던 열무와 소금물이 쏟아져 나와 공중으로 날아갔다. 대야는 마당에 쾅하고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내며 뒹굴었다. 그와 동시에 아빠도 중심을 잃어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열무는 우리를 향해 날아 왔다. 4남매가 쪼르르 앉아 있다가 소금에 절인 열무 세례를 받았다. 열무가 후두둑 머리위로 떨어졌다. 찝찔한 소금물도 함께 쏟아졌다. 놀란 동생들이 울기 시작했다. 어디서 저런 괴력이 나올까? 나는 입을 벌리고 아빠를 쳐다봤다. 우리가 앉아있던 마루 뒤까지 아삭아삭하게 살짝 절여진 열무가 떨어졌다. 엄마도 물론 뒤집어썼다. 나선형으로 돌았으니까 엄마를 덮치고 또 우리를 덮치고 최종 마루에 떨어졌다. 문제는 넘어진 아빠다. 아빠는 간신히 일어나 내동댕이쳐진 대야를 발로 확 차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모양새 빠지고 무척 아프셨을 거다. 엄마는 기가 찬 모습으로 서 있다. 내 얼굴로 흘러내리는 소금물은 짜다. 머리, 어깨, 무릎 군데군데 열무가 있다. 언니가 벌떡 일어나 일그러진 대야를 들고 온다. 나도 자동으로 일어섰다. 무엇을 했을까? 언니와 나는 흩어진 열무를 손으로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두 동생 울음소리는 그 날의 심각함을 알리고 있었다. 엄마는 앉아서 화를 가라앉히려 애쓰고 있다. 언니와 나는 최선을 다했다. 엄마한테 붙어있는 열무도 떼 내어 담았다. 힘들다. 그리고 동생들 옆에 가 앉아서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고 동생들 울음도 멎었다.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렸던지 언니와 나는 다리를 흔들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언니, 소금물은 왜 짜?”
“당연히 소금물이니까 짜지.”
“그러니까 왜 짜냐구?”

엄마가 이성을 찾았다. 엄마한테서 열무를 떼어낼 때 엄마 표정이 풀어지고 있는 걸 보았다. 얼굴에 묻은 소금물도 고사리 손으로 닦아 주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우리 때문에 힘을 얻었을 거야. 살 힘은 자식에게서 나온 것이다. 엄마가 대야를 끌어 수돗물을 채운다. 옆에 동그랗고 큰 채를 가져다 놓고 우리를 불렀다.

“옥이하고 경화, 이리와라. 이거 물에 흔들어 씻어서 채 위에다 하나씩 올려놔. 알았지?”

이쯤이야 우리에게는 즐거운 놀이다. 열무를 집어 물에 살랑살랑 흔들어 옆에 채에 옮겼다. 그것을 본 동생들도 달려와 동참했다. 재미난 놀이다. 그렇게 세 번 정도 했나보다. 노동이 끝나고 우리는 잠에 골아 떨어졌던 것 같다. 다음 날 하루는 더디게 시작되었다. 아빠는 아파서 누워있고 엄마는 늦게야 일어나 아침상을 차렸다. 우린 맛난 아침밥을 먹었다. 엄마가 설거지 하는 동안 아빠는 우리를 불러 등과 허리에 파스를 붙이게 했다. 파스 붙이기 역시 즐거운 놀이 중 하나다. 아빠는 흐뭇한 표정으로 엎드려 웃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부부싸움은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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