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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애국목사의 계보를 잇는 한기총 대표 목사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호세빈 | 기사입력 2019/10/02 [10:54]

한국의 애국목사의 계보를 잇는 한기총 대표 목사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호세빈 | 입력 : 2019/10/02 [10:54]

한국의 애국목사의 계보를 잇는 한기총 대표 목사

▲ 10월3일 시민혁명의 날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130년 기독교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은 나라와 민족의 급박한 상황동안에 수 많은 애국목사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주기철, 손양원, 이성봉 목사가 일제시대 때 순교와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이 나라를 위한 믿음의 뿌리를 가졌다면 한경직, 김준곤 목사는 공산주의와 예수한국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복음화를 위하여 이 땅에 예수를 심었고 조용기, 피종진 목사는 이 땅의 복음으로 온 세계로 복음을 전한 부흥사들이었다.

그 결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65,000개 교회 3,000개 기도원 2,000개 선교기관을 가진 1,200만 성도와 30만 목회자 25만 장로들로 복음화를 이루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북으로 분단된 대한민국의 정치사는 이승만 대통령이라는 위대한 크리스찬이 아니고서는 이제까지의 경제발전과 민주화 그리고 복음화를 설명할 길이 도저히 없다.

이승만대통령은 미국으로 유학갔을 때의 그는 목회자 장학금으로 학업을 하였다. 이는 그가 목회자가 되기 위한 학업이었고 일제의 강점기에 있는 조국을 위하여 밤낮으로 나라의 운명을 위해 미국사람들에게 독립을 알리면서 학업을 할 정도로 열심히 있었다.

1910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Neutrality as Influenced by the United States)이란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는 1912년 프린스턴 대학출판부에서 같은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광복 이후 제1공화국 시절 국내 정치적으로 압도적 카리스마를 가졌던 인물이다. 일제 패망 직후 국내에서 우후죽순처럼 등장했던 수많은 정치결사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이승만을 대표로 모시려 했다. 자유당 시절에도 그와 1:1로 대적할 수 있는 야당 정치인은 사실상 없었다. 그의 카리스마는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그는 구 한말부터의 정치투쟁과 투옥의 경력, 오랜 해외 독립운동의 신화, 모든 면에서 대미 의존적일 수 밖에 없던 1950년대 한국사회에서 미국을 다룰 수 있던 능력 등과 더불어 미국 명문대 박사라는 학술적 권위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국내에서 독보적 카리스마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본다.

자유당 시절 사람들이 흔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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